+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의 의지할 곳
그러니 말장수가 좋은 말을 다루듯이
자기 자신을 잘 다루라. <법구경, 380>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을까
자기를 잘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법구경, 160>
어디서나 자주적인 인간이 되라.
그러면 그 자리가 다 참되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臨濟錄>
☞ 인간의 주인은 神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불타(佛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인 입장.
신에 대한 관념이나 형이상학적인 견해는
불타의 기본적 입장에서 보면 개념적 존재에 불과하다.
자기 자신과 진리 이외에는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란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浮沈)하는 일상적인 자기가 아니라
본래적인 청정한 자아(自我)를 가리킴이다.
+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갖추고
그런 다음에 남을 가르치라
이와 같이 하는 지혜로운 이는
괴로워할 일이 없으리라.
남을 가르치듯 스스로 행한다면
그 자신을 잘 다룰 수 있고
남도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자신을 다루기란 참으로 어렵다. <법구경, 158~9>
☞ '불교를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배움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림이다.
자기를 잊어버림은 자기를 텅 비우는(無我) 일.
자기를 텅 비울 때 비로소 체험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그 어떤 것과도 대립하지 않고 해탈된 자기를 알게 된다.'
해탈된 자기란 본래적인 자기, 전체적인 자기를 가리킴이다.
그 이름은 잊었지만 어떤 선사(禪師)의 어록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에게 의지할 것이지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법(진리)을 등불 삼고 법에 의지할 것이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南傳 大涅槃經>
☞ 사람은 누구에겐가 의존하려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러므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 실현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말.
불교는 이와 같이 자기 탐구의 종교다.
자기 탐구의 과정에서 끝없는 이웃(衆生)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대승불교.
초기 불교가 자기 자신을 강조한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려는 뜻에서이다.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이웃과 세상에 도달하라는 것,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다면 그것은 종교일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진실한 지혜란 이웃의 존재를 보는 지혜다.
자기라는 표현이 때로는 (특히 대승경전에서는) 만인 공통의 '마음''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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